로마서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 (롬6:1-2)
로마서 1-3장은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전부 죄인임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5장은 칭의, 즉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일에 대해 서술합니다.그리고 오늘 본문이 포함된 6-8장은 성화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진술의 전개를 알 수 있습니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런다음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화'란 성도의 삶입니다. 과거 죄인이기에 죄악된 삶을 살았지만 이제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되었기에 실제로 성도의 삶에서 의로움이 나타남이 마땅한 겁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의 삶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죄의 종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의 말씀( 롬6장)을 바로 깨닫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롬6:1절은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 질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입니다. 이 말씀은 앞선5:20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바울의 말씀에 대적하는 반대자들에 대한 반론입니다. '만약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나타낼 기회를 제공한다고 가르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히 나타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짓도록 격려해야되는 것이냐?'
이에 바울은 2절에서 '결코 그럴 수 없다.' 하며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여 살 수 없다' 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죄에 거한다'는 말은 계속 죄 가운데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럴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로 결코 죄 가운데 머물러 죄를 지으며 살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으려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죄를 짓고 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예;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까지 온전히 구원을 받은 것(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은 아직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변화된 몸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원치 않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러나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변화될 것리니....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며 우리도 변화히리라." (고전15:51-52)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의 몸도 썩을 몸에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하여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변화될 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직 우리의 몸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아니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가장 큰 이유는, 다시 우리가 죄 가운데 빠진다면 이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요 오히려 우리로 범죄하게 하는 마귀 사탄을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의 형상을 본 받아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라." (벧전1:16)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계속 이어지는 롬6 :3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화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이유와 방법을 말씀합니다. 아침 묵상을 통해 계속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가 믿어진 아브라함에 이후에 삶은 한마디로 성화의 삶 이었습니다. 에덴개혁 장로교회 성도님들에게 성화의 은혜를 빕니다.